1980년 대 초반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현 소로스펀드 회장이 질문을 던졌다. “10년 후 한국에서 최고가 될 기업 3곳만 말해보세요.” 지금이라면 그리 놀랄 만한 질문이 아니지만 당시 정진호 더웰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때만 해도 국내에서 주식이라면 현재의 기업 가치를 기준으로 주가가 싸냐, 비싸냐를 평가했을 뿐이었다. 미래 현금흐름을 토대로 밸류에이션을 측정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 시기에는 아직 자본시장의 선진 기법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 때부터였을까. 정 대표는 늘 주변 사람들, 나아가 동 시대보다 조금 더 앞선 생각을 하는 데 매달려왔다. 지난 1991년 한국 최초로 펀드운용사인 에셋코리아를 설립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준 강력한 추진력이 돼왔던 것이다.

최근까지 사회적 기업에서 후진을 양성해왔던 정진호 대표가 이달 초 다시 투자 일선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12일 정 대표가 설립한 더웰스인베스트는 중소기업청에서 정식으로 창업투자회사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그는 벤처캐피탈을 세우면서도 새로운 콘셉트인 ‘솔루션(solution) 캐피탈’을 경영 방침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 대표가 정립한 솔루션 캐피탈의 개념은 벤처 및 스타트업(start-up)과 진정한 파트너가 되는 벤처캐피탈이다. 회수 리스크를 줄이려고 투자처에 안전 장치를 거는 데 주력하지 않고 벤처가 성장하기 위한 버팀목이 돼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처의 강점을 키워주고 문제점을 풀어주는 작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솔루션 캐피탈은 단순히 그의 지론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취지에서 보통주 투자를 최우선시하기로 했다. 특정 리스크가 너무 커 펀드 출자자(LP)가 피해를 입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주를 인수하는 구조를 투자 원칙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벤처캐피탈은 전환상환우선주(RCPS)에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처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그대로 상환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셈이다. 하지만 보통주 투자라면 애당초 상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투자처를 키워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더웰스인베스트는 벤처의 성장 주기에 맞춘 투자 시점도 기존 벤처캐피탈과는 차별을 두기로 했다. 보통 상장 작업에 착수하기 2~3년 전에 있는 벤처를 투자처로 물색한다면 그보다 1~2년 전 단계에 있는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미 알려진 딜은 너무 많은 경쟁자가 붙어 기업 가치에 거품이 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수십 년에 걸친 투자 경험 상 진짜 좋은 딜은 심사역 자신만이 접촉하는 경우”라며 “이 때는 무엇보다 경영진, 즉 사람을 통해 투자 확신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벤처의 진가는 창업자에 대한 분석”이라며 “앞으로의 비전과 비즈니스 사고방식이 특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진호 대표가 꼽는 최고의 경영자(CEO)는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이다. 과거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는 동시에 한 우물만 파는 전문가 말이다. 경영진의 도덕성도 역시 꼼꼼히 진단하는 대목이다. 머니게임을 통해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회사라면 아예 손을 대지 않을 계획이다. 기업 가치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경영진이 기업가 정신을 잃고 마는 사례를 숱하게 봐왔던 까닭이다.

더웰스인베스트는 바이오와 헬스케어 분야를 핵심 투자 타깃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가장 ‘핫’한 섹터로 꼽히고 있다. 정 대표는 우선 바이오벤처 투자에 주력하면서 자리를 잡은 뒤 문화콘텐츠 분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사실 정진호 대표는 옛 프루덴셜투자증권(현 한화투자증권)의 최고경영자로 더 알려져 있다. 1980년 대 초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로서 투자업계에 첫 발을 내딘 후 미국으로 건너가 푸르덴셜리서치펀드의 포트폴리오매니저로 활약했다. 그 뒤 프루덴셜금융그룹 미국 본사의 아시아투자 담당이사 자리에 올랐다가 한국으로 귀국해 에셋코리아와 액츠투자자문 등을 이끌었다.

더웰스인베스트에는 코스닥 상장사인 엑세스바이오도 핵심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정 대표는 “탄탄한 바이오 기업이 주주로 있는 만큼 딜 소싱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또다른 주요 주주인 재미교포 과학자 출신 사업가들도 투자 자문단으로서 회사 성장에 일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